본문 바로가기

일상·음악·예술가 Life Music Artist

루시엔 카 Lucien Carr (1925년 3월 1일 ~ 2005년 1월 28일)/ 킬 유어 달링

반응형

 

 

(출처 : 위키백과)

 

처음에 데인 드한을 보려고 '킬 유어 달링'이라는 영화를 봤었습니다. 이때 엄청 푹 빠져있었는데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어서 데인 드한이 연기한 루시엔 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졌습니다. 인물과 배경을 이해하고 다시 영화를 보면 또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루시엔 카(Lucien Carr, 1925년 3월 1일 ~ 2005년 1월 28일)는 1948년 창립된 비트 세대의 핵심 멤버이며, 2005년 사망 전까지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의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비트 세대는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획일화, 동질화의 양상으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항하여, 민속음악을 즐기며 산업화 이전시대의 전원생활, 인간 정신에 대한 신뢰, 낙천주의적인 사고를 중요시하였던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출처 : 위키백과)

세인트 루이스 가문의 후손으로 뉴욕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루시엔 카(이하 '카')는 어머니와 둘이서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12세 때 카는 인생의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인 데이비드 캄메러(David Kammerer)를 만납니다. 캄메러는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워싱턴 대학의 영어 강사이자 체육 강사였습니다. 캄메러는 세인트 루이스 가문의 또 다른 후손인 윌리엄 버로우스 (William S. Burroughs)의 어린 시절 친구였습니다. 캄메러는 카가 소속된 보이 스카우트 부대를 이끄는 동안 카를 만납니다.

그 후 5년 동안 캄메러는 카가 다니는 학교 등 카가 있는 어느 곳이든 뒤쫓아 다닙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스토킹에 가까운 행동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어린 나이의 남자아이에게 광적인 집착은 비트 세대 멤버들 사이에서도 논점이 됩니다. 카는 매사추세츠주 안 도버에 있는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메인주 브런즈윅에 있는 보우 도인 대학, 시카고 대학까지 여러 학교를 옮겨 다녔고, 캄메러는 카가 학교를 옮길 때마다 따라갔습니다. 두 사람은 성관계를 했다는 말도 나오지만 카는 항상 캄메러와 성관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카는 시카고 대학에서 가스 오븐에 머리를 집어넣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는 이 행위를 "예술 작품"이라고 설명했지만, 카의 가족들은 캄메러의 집착으로 인한 자살 시도라고 생각하여 카를 정신 병동에 2주간 입원시켰습니다. 뉴욕으로 돌아온 카의 어머니는 아들을 자신의 집과 가까운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시킵니다. 카의 어머니는 캄메러를 카에게서 떼어놓고 싶었지만 캄메러는 직장까지 관두고 뉴욕까지 따라옵니다. 버로우스도 캄메러의 집 근처로 이사합니다. 

카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1학년 때 뛰어난 학생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인문학 수업을 같이 들었던 동기는 그를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고, 마치 교수님과 둘이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며 극찬했습니다. 카는 학교 문학 토론 모임인 필로렉스 학회에 가입했습니다.

콜롬비아 대학에서는 기숙사에서 앨런 긴스버그를 만났습니다. 긴스버그는 브람스 트리오 연주소리에 이끌려 문을 두드리고 그곳에서 카를 만났습니다. 카와 친구인 에디 파커는 남자 친구 잭 케루악(Jack Kerouac)을 소개해줬습니다. 당시 22살이었고 선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카는 긴스버그에게도 케루악을 서로 소개해줬습니다. 카를 중심으로 하여 비트 세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캐머런을 동성애 공격자로 고발한 카는 1급 살인을 선고받아 소년원에서 18개월 복역했습니다. 복역 후 유나이티드 프레스(United Press, UPI)에 입사했습니다. 카는 비트 세대 멤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1950년 11월 케루악이 충동적으로 조안 해버티와 결혼했을 때는 베스트 맨으로도 섰습니다. 

카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직원이었습니다. 1956년 긴즈버그의 "아우성과 기타"와 케루악의 "길 위에서"로 급부상할 때, 카는 야간 뉴스 편집자로 승진했습니다. 그는 사생활을 보호차 자신에게 바친 긴즈버그의 '아우성과 기타'에서 자신의 이름은 빼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카는 결혼을 2번 했고 3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1952년 프란체스카 판 하르츠와 결혼했고, 사이먼, 갈렙, 이단 세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둘은 이혼을 하게 되었고 이후 쉴라 존슨과 결혼했습니다.

루시엔 카는 47년을 유나이티드 프레스에서 보냈고, 1993년 은퇴할 때까지 종합 뉴스 데스크의 책임자로 나섰습니다. 젊은 시절 화려한 문체와 엉뚱한 어휘로 유명했다면 편집자로서는 정반대의 스타일을 소화했고, 자신이 지도한 젊은 언론인 세대에서도 그의 입지를 키워나갔습니다. 

루시엔 카는 2005년 1월 워싱턴 D.C.의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에서 오랜 암 투병 끝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출처 : 영화 킬 유어 달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