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
톰 한센이라는 소년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전까진 행복할 수 없다고 믿었다. 어릴 때부터 우울한 영국음악에 빠졌고, 영화 '졸업'을 잘못 이해했던 탓이다.
썸머 핀이라는 소녀는 그와 달랐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부터 2가지에 집착하게 됐다. 첫째는 검은 긴 머리였고, 둘째는 머리카락을 자를 때마다 느끼는 무덤덤함이었다.
# 전지적 썸머 시점
1. 사랑은 없다. 사랑은 환상이다.
썸머 : 혼자 있는 게 좋아요. 남녀가 만나게 되면 누군가 상처를 입게 되죠. 왜 그래야 하죠? 우린 젊고 아름다운 도시에 사니까 심각한 건 잠시 미뤄두고 순간을 즐기며 살아야죠.
톰 : 잠깐만 그러다 사랑에 빠지면요? 어쩔거죠?
썸머 : 정말 그런걸 믿어요?
톰 : 사랑은 산타가 아니에요.
썸머 : 그렇다면 사랑이 뭐죠? 연애는 해봤는데 사랑은 못 해봤는데. 열에 아홉은 이혼해요. 우리 부모님처럼. (...) 고집부리는 게 아니에요. 사랑 같은 건 없어요. 환상이죠.
톰 : 당신이 틀렸어요.
썸머 : 좋아요. 정확히 어디가 틀렸단 거죠?
톰 :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그걸 느꼈을 때.
사랑 같은 건 없다, 환상이다. 저는 이게 정말 썸머의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원하고 있었다고, 깊은 상처가 있기에 그 상처를 보듬어줄 사람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모순이죠. 말로는 사랑은 없다면서 사실은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톰의 말에 썸머는 분명 동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심 톰에게 기대했을 수도 있죠. 만일 누군가 나에게 저렇게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한 번쯤은 눈길이 가지 않을까요. 그런 이유에서였을까요? 저 회식날 이후 회사 복사실에서 썸머는 톰에게 먼저 다가가 키스를 합니다.
2. 확실한 건, 썸머는 톰을 정말 사랑했다는 것.
톰과 처음 대화를 했던 날, 썸머는 톰이 듣는 음악에 대해 묻습니다. 자신의 취향이라고 하죠. 썸머는 건축 문외한이지만 톰이 건축을 좋아하기에 관심을 보입니다. 톰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관심을 보이고, 가구매장에 가서 톰의 장단에 맞춰주고, 또 톰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썸머에게도 좋아하는 장소가 됩니다. 톰과 이별한 후 동료의 결혼식 장으로 가던 길에 톰을 봤을 때도 썸머는 톰이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썸머는 톰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그래서 그가 좋아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같이 좋아해주고 맞춰주려고 했습니다. 썸머는 정말로 톰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톰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자신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사실을요.
3. 애인도 싫다더니 이젠 유부녀가 됐네.
썸머 : 있잖아, 톰 고백할게 있는데 사실 난 진지하게 만날 생각은 없어. 그래도 괜찮아?
톰 : 응.
썸머 : 황당해하는 사람도 있던데..
톰 : 난 아냐.
썸머 : 정말?
톰 : 그래, 편하게 천천히 하자.
썸머 : 응. 부담 안 가질게.
톰이 썸머에게 전 남자친구들과 헤어진 이유를 물었을 때 다 똑같다고 했습니다. 톰과 헤어진 이유도 그들과 다를바 없습니다. 톰도 진지한 만남은 싫다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전 남자친구들과 마찬가지로요. 톰은 썸머를 자신의 운명이라 확신했고 그런 그녀를 정말 사랑했고, 이별 후에도 많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톰은 썸머를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썸머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녀가 자신에게 맞춰주고 있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죠. 그녀가 퇴근할 때 일부러 스미스 음악을 크게 틀어 그녀의 시선을 끌려고 했고, 그녀에게 '행복의 건축학' 책을 선물하고,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그녀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의 음악 취향만을 고집했고, 그녀가 문신을 한다고 하니 절대 안 된다고 하고, 찌질하다는 말에 반응하여 폭력을 행사해놓고 너를 위해서였다고 하고,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그녀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말하는데 팬케이크 먹으러 가자하고. 톰이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면 그녀가 좋아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감해주고, 좀 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줬다면 좋았을 텐데. 썸머가 꿈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으로는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은 아무나가 아니다, 역시 그녀는 나의 반쪽이야라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톰 : 애인도 싫다더니 이젠 유부녀가 됐네.
썸머 : 나도 놀랐어.
톰 :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썸머 : 그렇게 됐어.
톰 : 그게 이해가 안 돼. 어떻게 된 거야?
썸머 :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깨달았어.
톰 : 그게 뭔데?
썸머 : 너랑 만날 땐 몰랐던 거...
(...)
톰 : 내가 화났던 건 네가 말했던 게 전부 옳았다는 거야. 그게 화나.
썸머 : 무슨 말이야?
톰 : 운명이니 반쪽이니 진정한 사랑 같은 거.. 동화 속에나 나오는 순 헛소리였다고. 네 말을 들을걸 그랬어.
(중략)
썸머 : 그게, 사실은.. 내가 식당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 책 내용을 물었고 그이가 내 남편이야.
톰 : 그렇구나. 그래서?
썸머 : 내가 영화를 보러 갔더라면? 내가 다른 식당에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10분만 늦게 식당에 갔다면? 우리는 만날 운명이었던 거야. 그때 생각했지. '톰 말이 옳았구나.' 네가 옳았어. 단지 내가 너의 반쪽이 아니었던 거야.
4. 결혼식장에서 춤은 왜 같이 췄고, 파티에는 왜 초대했는가.
왜 썸머는 톰과 춤을 췄고, 파티에는 왜 초대를 했는가? 결혼식장에서 톰을 만났을 떄는 만나는 남자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톰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톰 : 말하지 그랬어
썸머 : 그러게
톰 : 결혼식에서 춤췄을 때 귀띔해주지.
썸머 : 청혼받기 전이었어.
톰 : 사귀고 있었잖아.
썸머 : 응.
톰 : 그런데 왜 나랑 춤췄어?
썸머 : 그러고 싶어서.
톰 : 그냥 춤을 추고 싶었구나?
썸머 : ...
결혼식장에서 서로 코 골았던 이야기, 발 냄새난다는 이야기 등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썸머도 아직 톰에게 감정이 남아있어 보였습니다. 헤어지고 오랜만에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니 좋았고, 예전에 좋아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무르익어가는 분위기에 취해 함께 춤을 췄고, 그리고 파티에도 초대를 했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썸머는 청혼을 받았습니다. 파티에서 톰은 썸머의 결혼 반지를 보고 충격받아 그대로 파티장을 벗어납니다. 썸머는 정말 그런 의도로 톰을 불렀던 것일까요? 톰이 그대로 도망치지 않고 썸머에게 가서 물어봤더라면? 썸머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썸머는 정말 마지막으로 톰에게 기회를 준 것일까요? 자신을 다시 붙잡아달라고? 톰이 붙잡았으면 썸머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다시 톰에게 갔을까요? 그랬다 하더라도 둘은 다시 똑같은 이유로 헤어지지는 않았을까요?
어찌 됐든 둘은 썸머의 말대로 운명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톰이 도중에 파티장을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었더라면 과연 달라졌을지도 궁금하네요. 썸머가 톰을 파티로 불러낸 의도는 확실히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정말 톰에게 그렇게까지 상처를 주려고 했던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썸머는 톰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그를 기다렸고 그가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고 그렇게 썸머와 톰은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을 줄 알았어. 그 이후로 여길 좋아하게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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