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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음악·예술가 Life Music Artist

[에세이] 강의를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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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의 에세이]

강의를 대하는 자세 

 

 

성실히 출석을 하고 수업을 듣고 밤새도록 시험공부를 하고 열심히 한 학기를 보냈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반복의 시작이었다. 성적표에 A학점이 남아있고 장학금을 받아 기쁜 것도 잠시 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했는데 정작 아무것도 얻지 못한 느낌이었다. 배운 것이 있지만 굉장히 얕은 지식이었고 시간이 좀 흐르면 그 얕은 지식마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대학생활에 회의감을 느낀 적도 있다. 아마 한 번씩은 느껴보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들었던 강의들 중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 강의는 한 학기에 하나 이상은 꼭 있었다. 그 강의들을 들으러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늘은 또 교수님이 어떤 말씀을 해주실지 무엇을 배우게 될지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 강의들은 지금까지도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경제용어들에 익숙해지고 경제뉴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생소했던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다양한 가치관들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얻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변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학에서 듣는 강의가 우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학점을 떠나서 정말 자신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명강의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저마다 명강의의 기준도 다를 것이다. 같은 강의라 하더라도 학생마다 느끼는 차이가 굉장히 클 것이다. 어떤 학생에게는 기억에 남을 만한 강의가 될 것이고 또 어떤 학생에게는 그저 지루하고 재미없는 강의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런데 꼭 모두를 만족시켜야만 그 강의가 명강의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종종 듣는 말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마라이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이처럼 강의 또한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그 강의를 듣는 학생 중 단 한명에게라도 영향을 끼치고 어떠한 영감을 주었다면 충분히 그 강의 또한 명강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강의를 무조건 지적하기에 앞서 자신의 태도를 한번 바라볼 필요도 있다. 교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으려고 노력했는지 스마트폰을 본다거나 잡담을 하지는 않았는지 배우는 것보다 학점을 따는 것이 우선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취업난이 심해진 만큼 스펙에 대한 부담감도 많이 커지고 금전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 장학금을 받아야 해서 학점관리에 크게 신경 쓰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러다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고민에 빠졌었다. 이 후에는 수강신청을 할 때 정말 듣고 싶은 강의를 꼼꼼히 찾아봤다. 어렵고 따라가기 힘들다 하더라도 듣고 싶다면 신청을 했다. 듣고 싶은 강의를 들었다 하더라도 항상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강의 내용조차도 따라가기 힘든 수업이 있었고 일부 타과 전공의 경우 타과 학생들에게 한참 밀리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저조한 성적표를 보고 있어도 전혀 후회는 없다. 학점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명강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출처 : 예술과 함께한 순간)

 

듣고 싶었던 강의 중 한문학사가 있었다. 주위 친구들은 한문이라고 하면 지루하고 재미없고 어려운 것으로 질색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중에 혹시 중국어나 일본어를 공부하게 된다면 한자는 필수이고 또 한자를 잘 알면 한국어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으니 강의를 들으면서 한자공부를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에 한자를 공부하려고 신청했다가 강의를 듣는 동안 자전이 아닌 책장에 박혀 있는 논어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인문학의 중요성은 늘 알고 있었지만 쉽게 읽히지 않아 어려워하고 있었는데 한문학사덕에 어려워하던 인문학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된 것이었다. 여전히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소한 강의를 들으면서 배운 논어의 구절은 숙지하려고 노력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논어 원전을 해석해주시면 집에서 복습할 때 책장에 박혀있는 논어를 펼쳐서 똑같이 해석해보고 그 책에 있는 번역본을 읽었다. 논어를 산 이후 처음으로 논어를 제대로 읽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강의 교재에는 다양한 고전 인문학, 시조 등이 한문으로 실려 있다. 한자 문법을 공부 후 한문의 역사와 함께 예문으로 시대별 작품들을 배웠다. 교재에 실린 예문들 중 인상 깊었던 구절들은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한 번씩 들추어 본다. 다이어리에 적힌 구절 중 일부이다.

 

一羽之不擧 爲不用力焉 (힘을 쓰지 않아 깃털이 들리지 않는다)

輿薪之不見 爲不用明焉 (밝은 눈을 쓰지 않아 목재 한 트럭이 보이지 않는다)

 

위의 구절은 맹자의 말씀이다.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인의예지의 본성을 타고났으며 거기에 본인의 의지만 더한다면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힘을 써서 깃털을 들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밝은 눈을 써서 목재가 실린 트럭을 볼 수 있다. 강의를 듣던 시기에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낙담해있는 상태였는데 많은 생각과 다짐을 하게 해 준 구절이었다.

강의실 분위기는 대체로 자유롭고 편안했다. 교수님도 판서할 때 외에는 대부분 앉아서 학생들과 대화하듯이 편안하게 강의를 진행하셨다. 한문학사의 수업내용은 한문을 배우는 것에 앞서 한문의 역사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비전공자뿐만 아니라 전공자들도 다소 어려워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을 하여 지루하지 않았고 가벼운 질문들로 강의 집중도를 높였다. 지목을 해서 답변을 유도하지 않았다. 쉽고 가볍고 정답이 없는,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 질문들이 많아 적극적으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보통 강의를 들을 때 대체로 교수님이 질문을 던지면 적극적으로 답변을 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질문을 던졌을 때 학생들이 조용하다면 교수님은 학생 한명을 지목해서 답변을 유도하기도 하는데 항상 이런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학생들 대부분 부담감과 긴장감, 거부감을 느끼게 될 수 있다. 질문이 꼭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묻거나 그렇게 어렵지 않은 내용일 수 있으나 일단은 지목을 당하는 것이니 질문이 어떻든 상관없이 긴장상태에 빠지기 쉬워질 수 있다. 예전에 들었던 강의 중 하나는 교수님께서 정답을 말한 학생들에게는 가산점을 부여했었다. 나는 가산점을 어느 정도 받았음에도 그 강의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강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답을 강요하고 평가의 요소로 활용하기 보다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강의들 중 분명 유익하고 멋진 강의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너무 학점관리에만 신경을 쓰고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느라 눈앞에서 좋은 강의들을 놓친 것은 아닐까 싶다. 대학 내의 강의들을 잘 살펴보면 정말 괜찮은 강의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과제가 많다거나, 시험을 어렵게 출제한다거나 하는 이런 기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분야를 배워보겠다는 태도를 갖춘다면 아마 괜찮은 강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상당히 이상적인 말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강의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실제로 경험상 태도에 변화를 주자 대학을 다니는 것이 즐거워졌고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더불어 좋은 강의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어떤 강의가 좋았는지 별로였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강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했는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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